올해 초 종합편성채널에서 방영한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는 발음이 좋지 않았다.연기 경력이 적지 않은 배우인데도 b,ㄹ 받침은 거의 발음하지 못했다.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아 대충 살피며 장면을 넘기기도 했다.(시어머니로 출연했던 배우 김미숙과 너무 비교됐다.)
이 정도 발음이라면 인터넷상에서 말이 있지 않을까 싶어 검색해봤는데 의외의 기사가 있었다.
‘딕션이 좋은 배우’로 선정돼 목소리 재능기부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몇 달 전에 방영된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을 연기한 다른 배우들도 입 양쪽에 힘을 주고 입을 열지 않기 때문에 발음이 정확하지 않고 혀도 아랫니 안쪽에 붙여서 말하는 것 같아서 교정 후 유지장치를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녀 역시 딕션 좋은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두 배우의 공통점은 일단 발음하거나 공명시키는 데 필요한 입안의 공간이 없다는 점이다.입을 양쪽으로 벌리고 열심히 움직여도 발음이 잘 될 리 없다.
딕션(diction) [명사] 정확성과 유창성을 겸비한 발음
사람들이 이 두 배우의 발음이 정확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두 역할 모두 자력으로 성공해 재벌과 권력에 맞서는 역할로 대사가 빠르고 강하다.분노에 차를 외치는 장면이 많은데 그때마다 목에 힘을 주고 빠르고 강하게 발음했기 때문에 발음이 좋은 것처럼 들렸을 것이다.사람들은 이런 소리를 꽂는 소리라면서 딕션 좋은 배우로 꼽는다.
그러나 여기에 딕션의 정확성은 없다.타고난 음성이 맑고 잘 들리지만 호흡이 안 타는 납작하고 마른 소리였다.
사람들이 딕션의 사전적인 의미가 아니라 이런 캐릭터의 배우들에게 조금 다른 의미로 딕션이 좋다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배우 발음이 좋다’는 말은 잘 안 들어봤으니까.
발성이 좋은 배우는 발음도 좋다.
배우 이병헌은 이전에 본 드라마에서 낮게 내레이션하는 부분에서도 발성이 좋고 음성이 부드럽고 힘이 있으며 발음도 정확했다.
드라마에서 발성이나 발음이 남다르다 싶어 검색해보면 연극배우 출신이거나 성우 출신인 경우가 많다.
아나운서 지망생들도 뉴스를 강하고 정확하게 발음하려고 노력했지만 오히려 발음은 정확하지 않고 딕션만 살아있는 뉴스를 하는 것을 종종 본다.
(사전적인 의미가 아닌) 사람들이 쓰는 통상적인 의미의 ‘딕션 좋은 사람’과
발음이 정확한 사람을 구별하자.
물론 우리는 후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