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기자의 문화 in] 이정훈 개그맨

개그에 푹 빠진 남자예요.

이정훈 개그맨(사진=이주현 기자)[CEONEWS=최재혁 기자]현대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 풍부한 돈? 타인의 인정으로 높아지는 명예? 아니다. 단순해 보이고 느껴지는 돈과 명예는 현대 시민의 충분조건일 수 있지만 필요조건은 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의 소양을 높이고 깊은 삶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문화는 필요조건이 될 수 있다. 이에 기자는 문화 속에서 사는 문화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대인의 문화 소양을 키우고자 한다.

일요일 저녁은 너무 외롭다. 몇시간 지나면 학교에, 직장에 가야하기 때문에 안절부절못한다. 그래도 지친 내 마음을 달래는 건 KBS 개그콘서트였다. 우리는 개그맨을 보고 기쁜 날에도 슬픈 날에도 크게 웃으며 스트레스를 날렸다. 그 중심에는 이정훈 개그맨이 있었다.

이정훈 개그맨이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사진=이주현 기자) Q. 벌써 데뷔 19년차 개그맨인데 어떻게 개그맨이라는 꿈을 키우게 됐나요.

A. 어릴때부터 한번도 변함없이 저의 꿈은 개그맨이었습니다. 정말 어렸을 때 썼던 일기장도 다 가지고 있는데 거기 보면 ‘나는 커서 꼭 사람들을 웃기는 코미디언이 될 거야’라는 글이 적혀있어요.

사람들 앞에서 재밌고 재밌게 해주면 너무 기분이 좋아요. 게다가 명절에 어른들 앞에서 장난치고 개그맨들 따라하면서 즐겁게 해주시면 용돈도 더 많이 주시니 너무 즐겁습니다.

주변이 너무 좋아서 장기자랑도 빠짐없이 나갔어요. 당시에는 춤과 행동으로 굉장히 웃겼는데 그때 재밌었던 분들의 춤을 거의 따라하곤 했어요.

개그맨은 타고났다는 말이 있잖아요. 사실 저는 제가 잘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하지만 웃기고 싶은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합니다.

첫 개그맨 시험을 볼 때도 할 수 있을 때까지 할게. 개그맨 아니면 하고 싶은 게 없다고 생각하면서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아마 꼬마 유치원 때부터 쭉 했기 때문에 모티베이션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정훈 개그맨이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사진=이주현 기자)Q. 개그콘서트 무대에 서기까지의 과정도 궁금합니다.

A. 저는 KBS 공채에 두 번 떨어졌어요. 첫 시험에서는 2차 시험에서 떨어졌고, 2차 시험에서는 3차 시험에서 떨어졌어요. 당시 MBC 공채도 봤지만 끝내 떨어졌어요. 솔직히 아쉬울 수도 있지만 저는 아쉽지 않았어요. 스스로 아직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10번은 도전해보고 좌절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한반도 유머 총집합’과 KBS월드에서 하는 방송이 있었습니다. 그때 함께 했던 개그맨들이 지금 여러분도 알고 계신 분들입니다. 윤형빈, 유세윤, 유상무, 장동민, 김재욱, 이진호, 이용진 등 유명 코미디언들과 매주 함께 했습니다.

한반도 유머 총집합은 매주 오디션이 진행되었습니다. 오디션을 통과해야 무대에 올라 방송되는 시스템이었어요. 신인 때부터 필사적으로 열심히 연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프로그램이 없어지고 공채도 떨어진 상황에서 훗날 ‘KBS 20기’ 멤버들과 팀을 이뤄 신촌에서 공연했습니다. 열심히 공연하면서 실전 감각을 익혔는데 박승대 선배가 오디션을 보면서 하나씩 부르더군요.

근데 개그맨도 사람이잖아요. 거기서 ‘잘해, 잘해’ 이러니까 하나 둘 갔어요. 결국은 사람이 너무 없어서 저도 갔어요. 박승대 선배님이 잘 봐주셔서 계약을 진행하고 아마추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아마추어 패밀리에 양세형, 이진호, 이용진, 미키광수, 김용명 등 지금은 아주 좋은 친구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렇게 개그 준비를 하면서 저는 혼자 스탠드업으로 공연을 했는데 반응이 상당히 뜨거웠어요. 그 모습을 보고 박승대 선배님이 저를 부르고 계셨어요. ‘오디션 가볼래?’.

저는 꼭 KBS에 가고 싶었어요. 박승대 선배님은 “네가 몸을 잘 쓰니까 웃찾사에서 비둘기 합창단에 이 역할을 맡고 화산고등학교에서 받쳐주는 역할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설득을 하셨어요. 근데 저는 ‘KBS 아니면 안 돼’라는 고집이 있었어요.

권진영 선배님과 함께 KBS에 가서 오디션을 봤어요. 떨어지면 웃찾사에 갈 생각이었는데 KBS에 갔더니 기라성 같은 선배와 PD, 작가까지 모두가 저를 둘러싸고 있었어요. 결과는 다행히 폭발했습니다.(웃음)

게다가 당시 개그콘서트 감독님이 김석현 PD인데 모험적인 분이라 그런지 ‘해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특채로 공연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편집도 하셨고요. 그런데 김 PD님이 제가 몸을 자주 쓰니까 (김)병만 씨와 천명훈 씨가 조합을 만들어주셨어요. 그렇게 탄생한 게 ‘명훈아 나와라’였어요

이정훈 개그맨이 쇼미더퍼니 간판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사진=이주현 기자)Q. 무대에서는 몸과 행동으로 매우 웃기지만 사실 아이디어가 풍부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A. 다른 코미디언들의 기량과 재능에 비해 저는 배운 것도 별로 없고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어려서부터 연기도 배우고 지도도 잘 받았는데 저는 아무 연고도 없이 하려는 열망으로 부딪혔을 뿐이니까요.

남들보다 무조건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도전했습니다. 그래서 개그맨을 시작하려고 마음=마시자마자 술을 끊었습니다. 남들보다 일찍 나와서 늦게 들어가서 조금 자도 집에서도 항상 모니터하고 개그를 만들었어요. 그야말로 노력으로 재능을 이기려고 했어요.

제가 연기를 잘하고 잘 살리는 스타일이었다면 누구나 저를 불러주는데 도태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유머집을 다 정독하고 개그 프로그램도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대본을 펼쳐놓고 몇 번의 웃음이 어디서 나오는지 다 파악했습니다.

그때 깨달은 게 웃음 개수와 코너 대박 지수는 비례한다는 거였어요. 웃음이 짧은 코너에서 많이 나오는 게 좋더라고요 또 웃음을 위해서는 몸의 움직임과 행동, 표정, 목소리 톤까지 해야 하는 것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제 나름대로 공식화했어요.

Q. 정말 많은 아이디어를 냈는데 가장 기억에 남거나 만족스러운 코너는 무엇일까요?

A. 저에게는 ‘착한 녀석들’이 하면서 가장 행복하고 좋아하는 코너입니다. 사실 착한 녀석들은 기존 공개 코미디에서 하던 개그 틀을 모두 바꿨어요. 다른 사람의 코너에도 나오고 관객석에서 등장하는 등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코너였습니다.

닥터피쉬도 (유)세윤 씨랑 했던 코너인데 세윤 씨는 제가 아이디어를 내면 되게 좋아해줘요 엄청 비싸게 사드릴께요 (웃음)

착한 녀석들은 개그맨 이정훈의 이름을 널리 알린 작품이다. 그의 틀을 깨는 아이디어는 수많은 실전 무대 경험을 통해 다양한 상상력을 접목할 수 있었던 것이 배경이 아닐까.

이정훈 개그맨이 하루 매표원이 된 (사진=이주현 기자) Q. 무대 경험도 정말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대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A. 아마 제가 지방 투어는 어떤 개그맨보다 많이 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공연을 많이 하면 그거잖아요. 자연스럽게 노하우를 익힙니다. 개그를 시도했지만 터지지 않았을 때 대안을 바로 떠올릴 수 있습니다.

또 무대만큼 매력적인 장소가 없어요. 무대에서 웃겼던 사람들은 절대 무대를 지울 수 없어요. 특히 웃겼을 때와 환호할 때 느껴지는 감정과 스릴은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예전 닥터피쉬나 착한 녀석들 때 등장만으로도 정말 많은 박수를 받았거든요. 소름 돋아요. 개그가 성공했을 때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죠.(웃음)

성공한 개그를 위해 밤새 매일 연습했고 녹화가 끝난 날에도 회의했어요. 그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작가실의 유령’이라는 별명도 얻었는데 회의실에서 살고 있었어요. 노는 것보다 개그를 만드는 게 너무 행복했어요.

Q. 현재 ‘쇼그맨’이라는 팀을 구성하여 활동 중이기도 합니다.

A. 저를 포함해서 박성호, 김원효, 김재욱, 정범균까지 5명이지만 2015년에 결성해서 지방과 해외 투어까지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결성은 제가 개그콘서트를 그만두면서 생각했던 팀입니다. 범균이한테 ‘팬투어 하자’면서 서로 1명씩 필요한 사람을 데려왔기 때문에 지금 팀이 구성됐습니다.

구성원보다 팀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사실 홍보에 별로 힘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연 관계자들에게 홍보하고 개그맨 생활만 할 때는 몰랐던 대중문화에 대해 깨닫기 시작해 자체적으로 홍보할 뿐이었습니다.

개그는 말로 설명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공연 관계자분들을 모시고 직접 느낄 수 있도록 도와드렸습니다. 저희 공연이 이렇게 반응이 좋고 즐겁다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줬습니다.

사실 우리 다섯 명이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에요. 다른 코미디언이 봤을 때는 정말 드문 팀일 거예요. 각자 소속사도 있고 5명이 모이기가 쉽지 않은 팀이거든요. 다들 인지도만 높은 게 아니라 공연을 잘하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친하지 않지만 굉장히 잘 맞는 거죠. 저희가 결성한지 7, 8년이 되었는데 회식은 3번밖에 안했거든요.(웃음)

그렇다고 어색한 사이는 아닙니다.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라 뭉치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에요. 다섯 명이서 공연하는데 다들 무대를 너무 잘하는 사람들이라 시너지 효과가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이정훈 개그맨이 쇼미더파니를 소개하고 있다(사진=이주현 기자)Q. 쇼그맨이 다른 개그팀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A. 실제로 공연을 처음 준비할 때 옛날에 TV에서 했던 코너와 캐릭터를 가져오려고 합니다. 우리도 시도해 봤어요. 공연을 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안 좋더라고요. 전에 하던 공연을 다시 보여주려면 그때 그 멤버들을 데려오는 게 좋겠어요. 반응이 별로인 줄 알았어요.

지금 당장 회의하자고 설득했어요. 개그콘서트에서 했던 공연을 다시 보여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저희 콘텐츠를 만들자고 계속 어필을 했어요. 지금 공연이 되었습니다. 관객의 오감을 만족시키자가 중점이었습니다.

공연을 옆에서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참여하고 놀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관객과 함께하는 것도 많이 넣고 쇼도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가수들 공연을 보면 재미가 있잖아요. 여기저기서 좋은것들을 다 가져와서 만든 공연입니다.(웃음)

박성호 씨가 지금 50살이거든요. 형이 벽에 똥칠 때까지 하자는 말을 장난스럽게 또는 진지하게 합시다.

저희는 쇼그맨을 계속 하고 싶어요. 후배들이 계속할 수 있도록 잘 준비도 했어요. 개그 공연이라는 게 누군가에게 보여줬을 때 ‘너무 재밌었다’고 해야 되거든요. 후배들이 쇼그맨 같지는 않더라도 쇼그맨 같은 개그 공연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기자는 부산 코미디 페스티벌에서 쇼그맨 무대를 직접 경험했다. 개그콘서트를 워낙 좋아했기에 기대가 너무 컸지만 기대를 뛰어넘는 무대가 이어졌다. 뮤지컬, 연극을 포함해 어떤 공연도 쇼그맨처럼 시원하게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없었다.

이정훈 개그맨이 생각하는 (사진=이주현 기자) Q. 많은 개그맨이 유튜브로 승부를 벌이고 있습니다. 무대에서 공연을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도 아쉬움을 느끼겠지만 가장 아픈 건 공연하는 코미디언 같아요.

A. 맞아요. 사실 (윤)현빈 씨가 윤형빈 소극장을 운영하면서 정말 많은 피해를 입었어요. 코로나19를 지났는데도 적자가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정말 잘 견디고 있는 거예요.

현빈 씨가 공연도 좋아하고 공연계를 지키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개그 공연장이 없어지면 안 된다는 일념이 가장 컸습니다. 정말 대단한 형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많은 코미디언들이 유튜브로 향하고 있습니다.

A. 맞아요. 그 전에 제가 개그맨들과 방송국에 나갈 때는 불만이 정말 많았어요. 하지만 한쪽의 잘못만 있는 건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방송국에서 도와주는데 아쉽기도 하고 개그맨들도 한창 열정을 다하지 않은 것도 아쉬워요. 유튜브 등의 콘텐츠 발전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방송 개그에 한계가 있잖아요. 심의를 넘어야 하는데 유튜브는 달라요. 반대로 유튜브 개그를 무대에서 하면 정말 별로예요. 아주 직접적이고 단순해요. 이런 건 몰래 훔쳐보는 게 좋을 뿐이에요. 물론 무대와 유튜브가 모두 필요합니다.

개그를 하는 사람들 중에 유튜브에서 잘할 수 있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저는 박수 쳐요. 정말 잘한 일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인기를 얻은 만큼 꼭 공연을 만들어 달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 쇼박스가 왔잖아요. 정말 많은 관객들이 쇼박스를 보러 왔어요. 얘네는 스케치 코미디를 하잖아요 관객들은 “얘들이 하는 공연은 어떤 맛일까?”라고 찾아오는 거죠.

또 개그를 하면 돈을 못 벌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콘텐츠로만 개그를 하다가 무대에 한 번이라도 서면 ‘무대 갈증’이 생깁니다. 갈증을 해소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특히 승자 때 이 친구들이 다 떠올랐어요. 유튜브 댓글을 보는 것과 현장에서 웃음을 받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이정훈 개그맨이 인터뷰에 심취해 있다(사진=이주현 기자)Q. 아직도 대한민국 시민들은 개그에 엄격한 것 같아요.

A. 아무래도 흘러온 문화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희가 개그콘서트를 돈 주고 안 봤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개그를 보는데 왜 돈을 내야 하지?’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도 공연을 실제로 보면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개그 처음 보신 분들은 무조건 빠져서 서너 번 오세요. 제가 장담합니다.

무대에 와보니 만족도가 정말 달라요. 개그맨들이 연습에 공을 들이고 회의를 거듭해 나온 결과이니 그럴 수밖에 없죠. 개그맨들이 발로 뛰어서 홍보하고 직접 보여드릴 수밖에 없죠.

Q. 개그에 엄격하기도 하지만 문화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코미디’에 대해 특히 인색합니다.

A. 맞아요. 하지만 우리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해요. 옛날 개그맨들이 공연을 만들 때 인기에 힘입어 했던 적이 있어요. 뮤지컬이나 연극은 소품에 돈을 쓰지만 개그맨들은 지방 투어를 돌 때 의상이나 소품에 돈과 신경을 썼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그냥 웃음이 나는 것만 신경 쓰다 보니 평소 입던 옷 그대로 올라가 공연하는 거예요. 너무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만든 게 말씀드린 ‘쇼그맨’이에요. 저희는 의상도 갈아입고 무대에 일일이 신경 쓰면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개그 인기가 지금과 달랐을 때 공연을 찾는 관객들에게 나쁜 공연을 보여주니까 이런 상황이 온 거겠죠. 지금도 동료들에게 말합니다. 싼 (싸게) 공연하면 안 된다. 그리고 돈을 받을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 후배들에게도 주의 깊게 강조합니다. 잘 챙겨라. 웃기는게 다가 아니야. 돈값을 한 만큼 만족감이 있어야 한다. 돈을 더 내고 싶은 만큼 만들어 달라고. 이렇게 서툰 개그맨들의 잘못이 있거든요.

이정훈 개그맨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의 열정은 가라앉을 줄 몰랐다. 단지 말뿐 아니라 그의 눈과 손짓에서 답답함과 슬픔, 고통과 도전 정신이 느껴졌다. 그는 개그에 진심이다.

이정훈 개그맨이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실제로 이 자리에서 후배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는(사진=이주현 기자)Q. 인터뷰 내내 식지 않는 열정을 느꼈습니다. 비결은 뭘까요?

A. 저는… 사실 모르겠어요. 제자들도 매일 하는 말이 ‘선배는 왜 안 피곤해요.’ 신입 때부터 저를 보던 분들도 열정이 항상 같다고 합니다.

근데 저는 당연하거든요 저는 개그밖에 없어요. 딴짓 하고 싶지도 않아요. 물론 돈도 벌고 싶습니다. 사업도 해봤지만 스트레스만 받는 거야.제 길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과거의 여자친구들이 너무 싫어했어요.(웃음) 회의를 한번 시작하면 끝날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죠. 저는 운동도 매일 해야 하고 개그도 매일 준비하고 연습합니다. 얼마나 별로죠?

개그 말고 재미있는 건 없어요. 딴 짓을 하면 서운해요. 맛있는 거 먹고 여행 가면 되잖아요. 저는 그냥 개그를 만들고 싶어요. 여행가서도 개그 생각이 나서 단톡방에 올려 회의해요. 제 머릿속에는 개그밖에 없어요. 저도 모르겠어요. 뇌가 이렇게 고정된 것 같아요. (웃음)

저는 자고 일어나서 메모지에 아이디어를 쓰고 24시간 개그에 집중하는 게 생활화돼 있거든요. 후배들에게 말해요. 너희들 개그 잘하는 거 아니잖아. 나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이렇게 노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가 열심히 해야 돼 남 탓하기 전에 우리부터 개선해야 하잖아. 열정이 없는데 잘 될 것 같니?

올해 KBS에서 방송된 ‘개의 승자도 시청률이 생각보다 낮았던 이유가 있습니다. 기존 개그맨들의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돈도 벌 만큼 벌었고 유명한 사람들이 얼마나 노력할까요? 기대하러 온 거야.

그래서 저는 새로운 코미디언들이 하기를 바랐어요. 그놈이 반대해서 뭐하는 거에요? 방송국은 시청률이 중요하기 때문에 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네요. 절실한 사람이 해야 합니다. 쇼미더머니도 매일 나오는 사람만 나오면 누가 볼 것 같아요? 매력있는 신인이 나와야 재밌어요.

그래도 코미디 비수기에 열정적으로 절실히 준비하면 좋은 자리가 깔렸을 때 결실을 맺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쓴소리를 하는 선배이자 동료로서 공허할 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A. 공허하네요. 공허할 때가 많아요. 평소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말도 많이 있지만 ‘내 탓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거든요. 관객들이 웃지 않으면 제가 재밌게 만들 수 없었어요. 좋은 개그는 기복이 없거든요.

윤형빈 소극장에서 ‘쇼미더파니’라는 공연을 하거든요. 신인을 키우는 공연입니다. 아마추어를 키워 무대 경험을 시키고 어느 정도 되면 코미디 빅리그 등에 보낼 거예요. 생각보다 제가 컨설팅한 코미디언이 정말 많아요.

근데 돌아오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처음에는 저랑 밤새 동고동락하면서 ‘선배님, 제가 잘하면 꼭 보답할게요’라고 했던 친구거든요. 물론 저도 당시 “돌려주지 않아도 되니까 가끔 인사만 해달라”고 답했습니다.

가면 다리가 툭 멈추네요. 제가 연락하면 오히려 바빠집니다. 그만둘까 생각도 했어요. 쇼미더파니도 현빈이 형이랑 제가 가르치고 얘기하는 걸 좋아해서 켰어요. 정말 정말 공허해요.

이정훈 개그맨이 고민에 빠졌다(사진=이주현 기자) Q.19년 동안 개그맨으로 몸담아 오니 아쉽네요.

A. 방송국입니다. 방송국에서 제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아요. 제가 아무리 좋은 공연을 만들어도 PD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게 제일 화나요.

모르겠어요. 제일 중요한 건 대중의 감이거든요. 그런데 왜 본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대중이 좋아하는 개그가 아니라 PD가 좋아하는 개그를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저는 방송국 공개 코미디를 안 해도 돼요 개그맨은 현장에서 뛰는 선수잖아요. 냉정하게 현장에서 좋아하는 개그를 골라야 하는데 본인이 예뻐하는 사람들을 중용합니다.

솔직히 나보다 개그 공부를 한 PD나 작가가 있을까요. 저는 연출로 대결하면 이길 수 있어요. 관객과 매일 소통하는 사람과 일주일에 한 번 방송하는 사람은 대결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정말 답답해요.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도 개그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개그계가 밝지 않잖아요. 재능과 열정이 가득한 친구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무대를 그만두고 유튜브에 떨어집니다.

코미디 빅리그 간다고 출연료도 박봉인데 바로 오르는 것도 아니잖아요. 고생이라는 고생은 다 할 텐데 다른 행선지도 없고 얼마나 힘들까요. 옆에서 보고 있는데 너무 아쉬워요. 자꾸 원한이 쌓이는군요.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정훈 개그맨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개그를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공개 코미디의 이면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개그를 만드는 개그맨이 뒤로 미루면 관객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정훈 개그맨이 진지하게 인터뷰 중이다(사진=이주현 기자)Q. 몸을 담고 있는 윤형빈 소극장의 시작은 어떻게 될까요.

A. 처음에는 부산에서 시작했는데 정말 좋았어요. 근데 형이 맨날 서울에서 부산까지 오가지 못하잖아요. 시기만 보고 2015년에 결심하고 홍대에서 시작했어요.

일단 아까 말씀드린 ‘쇼미더파니’가 목요일과 일요일에 공연합니다. 개그맨 지망생들이 훈련하는 시간으로 매주 투표를 거쳐 반응이 좋은 코너가 올라갑니다. 신인들은 실전 경험을 쌓고 관객은 새로운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금요일에는 ‘홍콩쇼’라고 해서 현빈 씨와 개그맨들이 방송에서 못하는 개그를 해요. 야한 개그 등입니다. 어른들이 정말 좋아해요.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코미디의 맛과 성빈씨를 필두로 김지호, 정창민, 신윤승 등 개그맨을 주축으로 소극장에 특화된 공연을 펼친다.

현빈 씨를 밖과 공연장에서 보는 느낌이 정말 달라요. 형은 공연에 연이 박힌 사람이라고 느끼지만 직접 보시면 금방 체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팬이 많습니다.(웃음)

저희는 요일마다 다른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신인과 베테랑 개그맨이 각기 다른 개그를 선보이고 있거든요. 신인에게는 젊은 열정과 새로운 개그, 우리에게는 진하고 매운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 공연을 재미있게 봤다면 다음에 다른 공연도 추천하고 있어요. 저희가 초대권을 드릴 때도 있어요. 다음 공연도 꼭 맛보시길 바랍니다.(웃음) 박수 많이 쳐주셨으면 좋겠으니 웃으며 가시기 바랍니다.

요즘 마음 놓고 크게 웃기도 어려운 상황이잖아요. 저희 공연장에서는 아무 눈치 없이 웃을 수 있어요.

서울 유일의 개그 공연장입니다. 언제든지 웃고 싶고 스트레스 풀고 싶다면. 개그콘서트가 그립고 웃찾사가 그리우면 충분히 만족시킬 테니까 꼭 와주세요. 스마트폰 액정의 작은 화면에서 느껴지는 개그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정훈 개그맨은 시민들이 윤형빈 소극장을 찾아 웃으며 갔으면 좋겠다(사진=이주현 기자)Q. 지금까지 공연에 와주시고 계신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A. 개그는 반드시 직접 봐야 합니다. 저는 공연이 끝나고 가끔 듣습니다. 여러분 개그 공연 실제로 보면 재밌죠? 스마트폰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르죠? 그래서 나와야 돼요. 다같이 크게 웃으며 소통하고 에너지를 얻어가세요.

개그가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막상 와보니 전혀 재미없어요. 저희 개그 공연의 평점이 높은 것은 관객들이 정말 만족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개그 공연에 모든 것을 쏟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만족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그 재미없잖아요. 와서 보세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개그콘서트는 끝났지만 대한민국 개그맨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정훈, 윤형빈 개그맨은 자신들의 소극장에서 현실에 지친 시민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평일 오후 한 번쯤 소극장을 찾아 박장대소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보는 것은 어떨까.

http://www.ceomagazi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192 [CEONEWS=최재혁 기자]현대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 풍부한 돈? 타인의 인정으로 높아지는 명예? 아니다. 단순해 보이고 느껴지는 돈과 명예는 현대 시민의 충분조건일 수도 있지만 www.ceo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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