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11월 9일생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본명은 최동욱. 세븐이라는 예명으로 널리 알려졌다.[3] 히트곡으로는 ‘와’, ‘열정’, ‘타투’, ‘라라’ 등이 있다. 안양예고 시절에는 학교에서 늦은 시간까지 강당에서 연습과 운동을 했지만 수위의 지적을 받고 귀가하기 일쑤였을 정도로 근성이 넘치는 학생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YG 연습생으로 가수 준비를 했다.[4]무작정 가수가 되겠다며 YG엔터테인먼트 오디션에 참가했고, 양현석 앞에서 춤추고 노래를 불렀고, 양현석이 한마디 했다고 한다. 내일부터 와서 연습해라.”
후에 YG패밀리 2집 정규 멤버로 참여해 여러 곡에서 보컬을 맡았고, ‘한 번만’이라는 솔로곡을 넣기도 했다.[5][6]
2003년 1집 Just Listen으로 솔로로 데뷔했다. 타이틀곡은 ‘와’. 당시 바퀴 달린 신발인 힐리스를 응용한 안무를 선보이며 힐리스가 대유행했고 나쁘지 않은 가창력과 댄스 실력, 뛰어난 외모와 YG의 기획력을 등에 업고 데뷔 전부터 대형 신인이라고 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와’로 MBC 음악캠프 첫 5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나머지 5주 연속 1위 곡은 테이의 사랑은 향기를 남기고 버즈의 겁쟁이), 인기가요에서는 2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같은 해 디지털 싱글 ‘Crazy’를 발매하고 비슷한 시기에 히카리 등 일본 싱글을 발매하며 해외 활동을 꾀했다. 하지만 성적은 좋지 않아 일본 시장이 반응이 미온적인지 나중에 미국 진출을 하는 계기가 된다.
2006년에 두 번째 정규앨범을 발매했다. 24/Seven(07월 24일)과 Se7olution이지만, 나는 알고 있습니다, 라라 등이 히트했다.
2009년 미국에 진출해 인기 있는 여성 래퍼 릴킴이 피처링으로 참여한 ‘걸스’라는 싱글을 발매하며 활동을 시작했지만 대중적인 인기도 얻지 못하고 평론가들로부터도 ‘최악의 앨범’이라는 악평을 받으며 처참히 실패했다. 게다가 미국 진출을 위해 한국과 아시아에서 긴 공백기를 자의반 타의반 가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한국 아시아에서의 인기 하락으로 이어졌다. 비가 드라마의 대성공을 바탕으로 톱스타 지위를 획득하고 할리우드에도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진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7] 당시 우연히 미국 진출을 위해 미국에 온 보아를 자주 만나 미국 시장 반응이 미온적인 것을 보고 서로 탄식했다는 후문이다. 2007년 초 야심차게 도전한 드라마 궁S가 대실패했다.
2006년까지 남성 솔로 댄스 가수의 양대 산맥으로 꼽힐 정도로 인기가수였다. 데뷔 당시에는 같은 솔로 댄스가 가수라도 비는 ‘노래를 좀 잘하는 댄서’, 세븐은 ‘춤도 잘 추는 보컬리스트’였기 때문에 평론가 평에서는 세븐이 우세했지만 대중적인 인기는 비가 훨씬 높았다. 고교 선배인 비의 경우 (논란도 많았지만) 박진영의 프로듀싱으로 꾸준히 중박 이상의 히트곡을 발표해 상두 학교가자 풀하우스 등으로 연기자로 지평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
세븐의 경우 당시 소속사였던 YG엔터테인먼트가 (현재와 달리) 흑인 음악 레이블의 정체성이 강해 대중음악 쪽으로 서서히 눈을 돌리고 있는 상태였다. 실제로 이 시기에 낸 가수들이 1TYM, 휘성, 빅맘, 거미 등임을 보면 알 수 있다. YG는 세븐과 렉시에서 댄스 음악의 가능성을 타진하던 상태였지만 반대로 말하면 아직 대중음악을 이끌어낼 노하우가 없었다고 볼 수도 있다. 메인 프로듀서도 테디가 아닌 페리를 비롯한 흑인 음악 프로듀서였던 상황. 1집 ‘와’로 크게 성공했지만 안무만 있었을 뿐 음악 자체는 R&B였다. 2집의 경우 당시 어셔가 유행시킨 크렁크앤비를 어설프게 따라해 나름 인기는 얻었지만 어셔 따라하기라는 욕을 먹기도 했다. 보컬인지 춤인지 확실하게 보여주지 못해 당황한 것이다. 결국 가창력만 놓고 보면 비보다 훨씬 뛰어났음에도 대형 히트곡도 없고 국내 팬베이스를 탄탄히 다지지도 못한 상태에서 일본, 미국 진출에 실패하고 오랜 공백기를 거치면서 너무 빨리 하락세를 맞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