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수업 <라라프로젝트>의 박성희 선생님이 수업 중에 소개해 주신 글들이 좋아서 읽게 되었다.천문학자들이 쓴 에세이라는 사실도 신기했다. 네이처가 미래의 달 과학을 이끌어갈 차세대 과학자로 지목한 한국 여성 과학자. 멋지다.이런건 한번 읽어볼 가치가 있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_심채경 그런 사람들을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저게 도대체 뭘까 하는 것에 신나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 내지 않는,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고, TV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꾸는 영향력을 가진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 수백 년이 걸리는 곳에 끝없이 전파를 흘려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러한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P13 프롤로그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그들의 몰입이 무해하면 더 좋다.남의 흠을 들춰내는 정치인보다 아름다움에 몰두하는 예술가 가까이에 있고 싶은 마음은 그래서일까.우주비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소연은 수백 번의 대중강연과 인터뷰를 하고 당초 계약한 의무기간의 두 배가 되는 동안 우주인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우주인 프로젝트는 일회성 사업이었고, 앞으로도 우주인 이소연이 할 일은 11일간의 비행 얘기를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중략우주인 이소연이 할 후속 프로젝트가 할 수 있는 길은 아직 멀어 보였다. 고민 끝에 휴직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자 이번엔 먹튀(먹고 튀는)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곳에서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했을 때도, 휴직기간이 만료됐고 마침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퇴사했을 때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중략규정 위반으로 우주비행에 참여하지 못한 고산도 연구원과의 의무계약 기간을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역시 우주인으로서의 정체성과는 별로 접점이 없는 분야에서 유학을 떠났지만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다.P1022부의 ‘최고의 우주인’ 챕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기사로 어렴풋이 알았던 이소연 박사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누구나 그렇지는 않지만 여성의 업적을 쉽게 비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여자가 바로 내 딸이고 누나이고 아내일 수도 있는데. 보안규정 위반으로 우주비행에 참여하지 못한 고산에게 하지 않은 비난을 왜 이소연 박사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듣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여자든 남자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 해냈다면 업적을 칭찬하면 된다. 공정하지 못한 잣대로 불필요하게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얼마 전 한국에서 15년간 미생물연구소에서 헤파티티스(Hepatitis) A, B 등을 비롯해 에볼라(Ebola) 바이러스를 연구하던 독일 생물학자를 알게 됐다. 그 생물학자가 15명이나 살던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간다고 해서 그 이유를 물었다. 한국에서 어떤 연구를 해야 외국인 연구자가 연구를 이끌고 성과를 내더라도 연구 결과를 발표할 때 외국인 연구자의 이름이 아니라 함께 참여한 국내 연구자의 이름으로 발표된다는 것이다. 연구 분야의 생태계를 잘 몰라서 그런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한국에서 진행된 연구라 한국의 업적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까. 나는 우리나라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사람이지만 진실을 왜곡해서 얻는 명예라면 부끄러울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에 애정이 있던 능력 있는 과학자가 한국을 떠나는 것도 안타까웠다.
어린 왕자가 등장하는 대목에서는 이과 오빠인 심채경 박사와 문과 오빠인 내가 얼마나 다른지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나도 어린왕자를 좋아한다. 한국어로 읽었고, 너무 좋아서 프랑스어를 전공할 때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프랑스어로도 찾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황혼 광경을 좋아하는 어린 왕자가 나오는 대목에서 글을 읽으며 일몰을 감상하는 어린 왕자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지만 논리적으로 맞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일몰을 다시 보려면 의자를 앞으로 당겨 해를 향해 접근해야 한다 논리적으로 봐도 맞는지 틀렸는지도 모르겠다는 게 과학적 지식이 없는 내가 뻔한 반응이다.


1969년 7월 닐 암스트롱 아폴로 11호 선장은 착륙선의 사다리를 타고 달에 첫발을 내디디며 한 사람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라는 명언을 남겼다.P260의 다양한 소재를 천문학자의 입장에서 해석해 신선했으며 특히 1, 2부는 일반 에세이처럼 무리 없이 잘 읽혔다. 3부 아주 짧은 천문학 수업이라는 챕터에서 과학적인 설명이 나와 읽는 속도에 약간 제동이 걸렸지만 누구나 한번쯤 읽어보기 좋을 만큼 좋은 책이었다.
인류에게 거대한 도약을 남길 수 있는 어떤 발자취가 앞으로도 계속 나올지 정말 기대된다.과학자들은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연구하고, 파이라면 원주율보다 사과 파이가 먼저 생각나는 나 같은 사람은 그냥 파이를 굽기만 하면 된다. 그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인류를 위해 뭔가 이룰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