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방까지 태워 주시겠어요?” 평안도 사투리를 쓰는 남자가 반도호텔 엘리베이터 보이에게 말을 걸었다. 미국식 예의범절을 익힌 남자는 시종일관 상냥하고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의 이름은 필립 앤(Philip An). 할리우드에 진출한 최초의 아시아계 배우이자 영화 모정(1955)과 625 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는 딘 헤스 대령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전송가(1957)에 출연해 할리우드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인물이었다. 그는 1959년 3월 12일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운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땅을 밟은 것이었다.
필립 안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으로 한국의 자주독립과 민주주의적 민족국가 수립을 위해 헌신한 지도자였다. 일제는 그의 영향을 두려워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38년 3월 10일 만 59세 일기로 서거할 당시 민중시위가 일어날 것을 우려해 망우리 공동묘지로 향하는 길을 봉쇄하고 경계를 늦추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친족 2명이 전부였다. 이승만 박사도 만시 도산천고를 지어 애도할 정도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통곡했지만 식민지 시대를 떠나야 했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마지막 길은 쓸쓸하고 고독했다.
1959년 3월 18일 오전 11시 필립 안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을 경무대로 예방하였다. 아버지와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 노선에서 차이를 보였지만 일제강점기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남 필립 안을 옛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반기고 조국 땅을 밟은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저의 가신이 일제와 투쟁했고, 그로 인해 돌아가신 것도 이곳이고, 또 그의 영면지인 조국을 태어나서 처음 밟으니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감회가 새롭다는 듯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가는 필립안을 바라보던 이승만 대통령은 어머니 이해령 여사와 다른 가족들의 안부, 필립안의 미국 활동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 자리에서 필립 안은 한국을 주제로 한미 합작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아쉬운 만남의 장을 마무리했다. 짧은 만남이었다.
이후 필립 안은 도산 안창호 선생 묘소를 이전하기 위해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았다. 노력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처음으로 우리 땅을 밟은 지 14년이 지나야 했다. 1973년 11월 10일 필립 안은 미국에서 옮겨온 어머니의 유골과 망우리 묘지에 묻힌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유골을 강남에 조성된 도산 공원에 합장하였다. 그 자리에는 정일권 국회의장을 비롯해 사회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김종필 국무총리는 조사에서 도산 선생은 우리가 높이 우러러보는 민족의 큰 별이며 역사의 밝은 등불이라며 도산공원은 선생과 부인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우리 민족혼의 광장이자 국민의 정신적 성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주제로 한미 합작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포부를 이루지 못한 필립 앤은 1978년 2월 28일 미국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날은 한국 시간으로 31절이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남으로 태어나 미국에서 뿌리를 내린 배우로, 이후 성공한 레스토랑 경영인으로 화려한 삶을 산 필립 안은 1984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Walk of Fame)에 이름을 남겼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대통령의 특별한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