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리뷰리카르도 가족이 산다는 것, Being the Ricardos 모음집(Home)과 가정(Home)을 지키겠다는 것.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서 <리카르도 가족으로 산다는 것 Being The Ricardos>를 봤는데요. 처음에는 영화가 실화인 줄 모르고 아카데미 후보작이라는 이유로 봤는데, 이 영화가 미국 유명 시트콤 ‘말괄량이 루시 I Love Lucy’의 주연배우 루실 볼과 그녀의 남편 데시아나스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셜네트워크>나 <시카고7> 등 아론 소킨이 집필한 다른 영화들처럼 이 영화도 초반부터 다양한 시간대를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며 루실과 데시 부부의 무명시절과 <말괄량이 루시>에서 활약했던 시기를 보여줍니다.

영화가 다루는 주요 시간대는 메카시즘 열풍이 한창이던 1950년대. 루시도 공산주의자로 오해받아 ‘말괄량이 루시’라는 쇼가 존폐 위기에 빠졌던 시기입니다. <말괄량이>가 폐지될까봐 예민해진 제작진과 달리 루실은 평소처럼 <말괄량이>의 동료 제작진을 컨트롤하려다 보면 갈등이 생깁니다. 물론 남편 데시와의 부부생활에도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위기에 처한 순간에도 <말괄량이 루시>의 완성도를 위해 투쟁하는 루시를 가정(Home)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부모처럼 보여줍니다.
영화가 집중해서 말하는 부분은 루실이가 평범한 가정을 갖기를 원했다는 점입니다. 루실이는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기 때문에 보통 부모님이 없었어요. 남편 데시는 공연 때문에 자주 보지도 못했고 루실도 자신의 커리어를 발전시키고 싶은 개인적인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런 루시에게 가족 시트콤 <말괄량이 루시>는 자신의 커리어를 발전시킴과 동시에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수단이자 새로운 집(HOME)이었습니다. 루실은 <말괄량이 루시>가 시청자들의 오랜 사랑을 받도록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말괄량이 루시가 오래 방영돼야 내 가정(HOME)도 지킬 수 있으니까요.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실제로 자신의 가정을 붕괴시켜 버립니다. 루실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말괄량이 루시>의 연출자, 작가진, 제작자에게 월권을 휘두르는 루시의 모습은 갑질보다는 청소년 자녀를 통제하려는 부모 같습니다.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말괄량이 루시>는 루실이 지키고자 하는 가정이니까요. 루실은 시나리오는 물론 동료 배우의 다이어트에까지 관여하는 등 선을 넘기도 하지만 공산주의자로 내몰릴 위기에서도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말괄량이 루시> 제작진들은 루실의 진심을 알게 됩니다. 의사소통 방식은 마음에 따라 다르지만 그래도 서로를 아끼고 있었다는 것을.

그들의 모습은 마치 표면적으로는 삐걱거려도 마음속으로는 서로 사랑하는 부자, 나아가 또 하나의 가족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루실도 여러 갈등을 겪으면서 자신이 모든 제작진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점차 변화합니다.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사과를 하기도 하고 자존감이 깎여도 솔직한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루실이는 서툴지만 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로 성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루실에게 <말괄량이 루시>는 그냥 집(Home)이 아니라 가정(Home)이니까요. 물론 일부 가정이 그렇듯이 루실은 이혼을 통해 이 가정을 유지합니다.
때로는 어떤 가정은 부모가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보다 이혼을 통해 불화를 막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 좋기도 합니다. 영화 중반까지만 해도 루실은 모녀가 함께하는 것만이 행복한 가정의 근원이라고 믿었지만 남편과 아이를 두고 연기 동선을 고치러 갑니다. 가정의 행복이 오로지 남편과 아이를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또한 루실은 <말괄량이 루시>를 지키기 위해 온갖 힘을 쏟았지만, 그 행위는 결국 남편의 권위와 체면을 깎는 행위였고 남편은 바람에 빠졌습니다. 그토록 평범한 가정을 지키고 싶었던 루실은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데시와의 이혼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이혼이라고 해서 모든 결과가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루실 볼과 데시 오너즈는 이혼 후에 더 친해졌다고 합니다. <말괄량이 루시> 속 리카도 가족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씁쓸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루실이는 나름대로 가정을 지킨 셈입니다.
영화는 가장 미국적이고 가장 평화로운 가정을 소재로 한 시트콤에 참여한 배우들의 이면을 통해 당시 사회가 통제하고자 했던 전형적인 가정상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미국 여성의 남편은 무조건 미국인이어야 한다 혹은 조연 빕은 아름다우면 안 된다는 것이나 임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 “나는 공산주의자는 아니지만 잠시 동의한 적은 있었다”고 솔직하게 주장하는 행위를 막는 등 많은 시대적 규범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짜증나게 했는지 지적하기도 합니다. 물론 <말괄량이 루시>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에 대한 헌사도 잊지 않겠습니다. 흑백 화면으로 재현된 <말괄량이 루시>의 스크류볼 코미디를 통해 과거에 대한 향수는 물론, 루시르의 피나는 노력에 헌사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리카르도 가족처럼 평범하고 사랑스럽게 살고 싶지만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고통을 참고 관객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주는 루실 볼 같은 배우들이 있어서 우리가 이 어려운 세상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S. 오랜만에 니콜 키드먼의 명연기를 봐서 좋았어요.<디어워스>, <라이언>, <뮬란루즈> 때처럼 니콜 키드먼의 연기력이 모두 총동원된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