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10년 만에 다 본 소감.

<BIGBANG 이론>은 내가 중학생 때 가장 먼저 본 미국 드라마다. 미드 잘 즐기는 편은 아니야. 특히 시트콤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국내와 해외 작품을 합쳐 <빅뱅 이론>만큼 열심히 본 드라마도 없는 것 같다. 중고등학생 때는 합법적으로 볼 수 있는 경로가 마땅치 않아 별다른 죄의식 없이 웹하드로부터 내려받기도 했지만 현재는 그런 사이트 근처에도 가지 않고 무조건 왓챠나 넷플릭스를 이용한다.

사실 시즌 9쯤 됐을 때 흥미가 없어져서 그만뒀어. 시즌9이 방송한 15-16년은 제가 제일 바빴던 수험생 시절이기도 했고. 그런데 최근 안 그래도 잘 안 되고 꼬인 삶에 남들은 한 번 걸릴까 말까한 코로나19를 살면서 두 번이나 걸리는 군더더기 없는 업적을 달성, 휴가를 나와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자가격리를 하게 되면서 우울감이 심해졌다. 그래서 어떻게든 기분을 전환할 만한 것을 찾아야 했는데 과거에 <빅뱅 이론>을 보고 머리를 비우고 키득키득 웃던 때가 생각나서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사흘 만에 시즌 12 완결까지 마쳤다. 저는 집 안에 있으면 뭐 하나 집중이 안 되는 스타일인데 그런 제가 한 편에 20분 하는 드라마를 그것도 국내 드라마가 아닌 미드를 하루종일 틀어놨다는 건.

내가 중고등학교 때 본 초기 ‘빅뱅 이론’은 사회성이 조금 떨어지는 대신 각자의 분야에서 상당한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내드들의 여러 재미있는 상황과 지나치게 현학적인 어휘 사용으로 벌어지는 황당한 대화, 혹은 코믹북 이야기를 통한 농담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야기는 이들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일어나는 소동으로 발생하는 코미디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시즌을 거치면서 7명의 미숙한 천재들은 정서적으로 성장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진정한 어른으로 도약했다.

시즌 12 마지막회는 셸던의 노벨상 수상 소감이 마지막 시퀀스인데,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셸던이 자신의 친구들을 하나씩 불러 이들에게 영광과 감사를 전한다. 무리 내에서 혼자 박사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모든 시즌 내내 무시했던 하워드를 ‘우주인 하워드’라고 확실히 부르기도 한다. 이후 다시 아파트로 돌아와 카우치에 앉아 음식을 나눠 먹으며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항상 그랬지만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장면을 끝으로 길고 길었던 <빅뱅 이론> 이야기가 끝난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닦았어.

그것도 그런 일이 적어도 이번 휴가 때 내가 정말 진심으로 뭐가 재밌다고 생각해서 소리내어 웃었던 적은 이 드라마를 볼 때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는 정서적으로 피곤했다. 얼마 전에는 방에서 혼자 소주를 많이 까다가 술마시는 김에 어디 죽으러 갈 것 같은 사람처럼 글을 쓰다가 이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우기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난 죽지 않아.

열다섯 살의 내가 가장 좋아했던 드라마를 스물다섯 살이 된 지금에서야 시청을 마쳤다는 것은 <빅뱅 이론> 캐릭터들이 성장하는 그 10년 동안 나에게도 수많은 변화와 성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마지막 카우치 장면은 10년 동안 많은 변화와 우여곡절을 겪었고, 그 우여곡절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 알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위로가 됐어 이 드라마로 힐링이 될 줄 몰랐어.

시즌 11화부터 고장났던 엘리베이터가 시즌이 끝나야 고쳐진 것처럼 영원히 고쳐지지 않을 것 같은 자신만의 엘리베이터가 언젠가는 고쳐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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