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가 역사의 아픔과 충돌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보도 사진에 관한 날카로운 논쟁이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어 가는 아이를 지켜보는 독수리의 사진입니다. 아이를 구하는 것이 먼저인가, 그 광경을 사진에 남기는 것이 더 중요한지에 대한 논쟁입니다. 작가 주의와 휴머니즘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이를 먼저 도와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목숨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논란이 된 대구 매일 신문의 만평에서 내가 본 것도 아이의 죽음을 기다리는 독수리입니다. 정부의 조세 정책을 5·18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들을 짓밟고 있던 계엄군의 사진에 빗댄 그림은 충격이였습니다. 그리고 어제 그 신문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조세 정책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강도로 비판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5·18을 직접 경험했던 나로서는 참으로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구 매일 신문과 만평 작가님에게 묻습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표현의 자유가 만약 남의 상처를 자극하는 것은 아닌지 한번은 되돌아 보았습니다? 계엄군의 막대기에 담긴 피 나마그사이 진실을 보도한 사진과 그것을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에서 소비하는 것의 차이를 아시죠? 혹시 작가 주의가 아니라 스스로 아이의 몸에 탄 독수리가 된 줄은 몰랐어요?


